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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이야기

눈 부시게 싱그럽던 그 시절

마스터즈 2018.04.01 05:53 조회 수 : 85

 

우리집 마당 가운데에는 두 그루의 큰 나무가 있는데, 그중 나이가 오래된 큰 나무 한 그루는 봄소식도 모르고 덥다고 하는 한 여름이 되어야 겨우 잎이 나고 또 잎이 떨어질때에는 남 보다 앞서 잎이 져 버리는 애물단지이고.
다른 한그루는 잎사귀가 크지는 않지만 상록수 처럼 일년내내 푸른잎이 있는 젊은 나무이다.

이 나라의 날씨가 그렇지만, 특히 여름에는 습기가 거의 없어서 밖에는 타는 듯이 빛이 강해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하다 못해 추울 지경이다.
그래서 보통 나무 밑에 있는 야외용 의자에 앉아 있으면 머리는 그늘에 두고 바지를 입은 다리는 따가운 햇빛 아래에 둔다.  그러면 상체는 시원하고 다리는 따뜻하고 

젊은 상록수가 없을 때에는 태양빛이 너무 강하면 뒷 정원에 나가도 어디에 마땅히 있을 때가 없었는데, 이제는 어느때에 나가도 시원한 그늘을 즐길수가 있다.
처음에 이사와서는 너무 자랄까 싶어서 몇번이나 못자라게 위를 자르기도 했는데, 이제는 오히려 더 크게 자라라고 이야기 한다.
날씨가 좋으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잔디는 푸르고 하늘에 뭉게 구름이 떠있고, 산들바람이 불고, 수십마리의 새들은 뭣이 그렇게 즐거운지 연신 지저귀면서 날아 다니고.

우리집은 집이 길쪽으로 조금 더 당겨 지어져서, 남들과 같이 대지가 200 평 정도 되는 평균적인 사이즈인데도 불구하고 뒷 정원은 더 크게 보인다.
잔디를 잘 깍고 이쁘게 하면 절로 즐거워 지고 아주 쾌적해 진다.

약 2주전 즈임인가에는 길옆 앞 마당에 있는 동백나무가 너무 자라서 집앞의 길을 막기도 하고, 정원쪽으로 가지가 너무 자라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가지를 쳐버린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가 다시 집에서 보니 어느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옆에서 붙어 자라는 곁 가지를 조금 더 잘라내야 하나하고 그 줄기를 잡고 흔들면서 아래위를 살펴보는데..... 앗..... 동백나무의 위 가지 사이에는 새둥지가 있고 그위에서는 블랙버드라는 새의 암컷이 둥지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아이쿠 싶어서  " 미안하다.... 나는 본것이 아무것도 없다" 하면서 못본척 슬며시 다른데로 시선을 돌리고 나온적이 있었다.

지난번에 가지치기를 할때 그 어미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그날이후 이삼일을 지켜보니 어미새가 연신 먹이를 물고 나무위를 오르락 내리락 했다.

그뒤에 멀리서 보니 새끼들의 주둥이가 보이는 것도 같았는데, 다음날 자세히 살펴보던 둘째는 새끼가 네마리나 있었다 한다.
그래서 가든 정리할 일이 있어도 일부러 가까이 가진 않고 했는데, 며칠전에 다시 보니 둥지는 이미 비어 있었다.
그렇게 큰 새끼는 보지 못한 것 같았는데..이넘들이 어디로 간 것인지.

며칠전에는 나무 그늘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쉬고 있는데 블랙버드 두마리가 찾아 왔다.
가만히 움직이는 모양새를 보니 한마리는 어미고 한마리는 새끼였다.
새끼는 덩치가 얼마나 큰지 함께 있으면 엄마새와 구분이 안될 정도 였는데, 하는 움직임은 이것 저것 모두 신기해 하면서 쳐다보고 뒤지는 모습이 영락없이 어린애 였다.

그때 마당 가운데 즈음에 먹다남은 식은밥(월남쌀이라는 것으로 지은 밥) 한두 덩이가 있었는데, 어미새는 연신 물어다가 새끼새의 입에 넣어다 주는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 근처에 있으면 가까이 오지 않는데, 그날은 나도 눈동자도 굴리지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만, 거의 5 미터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까지 다가와서 밥알을 물고 갔다.
내가 마네킹처럼 가만히 있어서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새끼한테 먹이를 줄 욕심이어서인지 잘 분간이 안갔다.

참새도 다 큰 새끼는 어미만 한데, 먹이를 받아 먹을때 보면 뒷 궁둥이 부분을 바르르 떨면서 얼마나 재롱떨며 흔들어 대는지 흉내조차 내기 힘들다.
그런데 엄마가 다른데로 가고 나면, 저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리저리 날아 다니는데, 나중에 엄마가 새끼를 어떻게 찾는지 신기하다.

그뒤에 집안으로 들어와서 유통기간이 지난 큰 빵을 몇조각으로 나누어서 마당에 던져주니, 온동네 새가 다모여들어 아예 파티를 했다.
그런데 이넘들이 보자하니 빵부터 입에 대고 밥에는 입을 대지 않는다.
아무래도 우리하고는 달리 어릴때 부터 양넘들 빵맛에 길들여져서 그렇나...그러면 밥위에 짜장이나 아니면 카레 같은 소스를 얹어주면 그것 부터 먹으려나 했다.
그런데 오렌지 같은 과일은 먹으라고 주어도 쳐다보지도 않는 이넘들이 가을만 되면,  우리집에서 자라는 포도와 체리는 저거들이 다 먹어 치운다.
나쁜넘들.

지난주에는 웨스트 모어랜드라는 크라이스트 처치 남쪽의 언덕배기 길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 언덕위에서 보니 크라이스트처치는 과히 정원의 도시라 할만큼 나무숲에 쌓인 도시였다.
가끔씩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도로의 양쪽에 꽃이 만발해 있는 길도 많이 있다.

이제 철은 이미 갔지만 특히 벛꽃은 바람이 불면 꽃이 가볍게 날리면서 떨어지는데... 하늘에서 꽃비가 온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할 정도였다.

여기에서 오래 살다가 보니 이젠 무덤덤 해진 느낌도 없지 않지만, 가끔씩 문득 자세히 눈여겨 보면 하나 하나가 모두 천국이요, 중국 무협영화에 나오는 배경같이 환상적일때도 많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던, 가꾼 자연이던 깨끗한 환경은 아름답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풍경들도... 때로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 때문에 오히려 아파지기도 함을 느낀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온 나날들.
그리고 번민하던 나날들.
그리고 다시 달려가던 나날들.

그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기 시작하고, 자꾸 주위를 돌아보게 되고,
때로는 이유없이 이미 흘러간 오래된 기억들이 자꾸만 다시 생각난다.
이런 것을 유식한 사람들은 정신적 퇴행 증상이라 하던데.ㅎㅎㅎ
내가 벌써 그럴때는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세계 명작이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고, 몇권을 읽었다 해도 어릴적 시골서 자란 나의 모습과 너무 동떨어진 달나라 이야기라 별 감동도 느끼지 못했고,
그것 보다는 오히려 뒷 줄거리가 떨어져 사라져 버린 결론을 알수도 없는 미완성의 삼국지를 몇번이나 읽으면서 영웅의 세계를 꿈꾸었던 그런 사람이, 이제는 로또 복권 한장을 손에 쥐고 즐거워하는 작은 사람이 되었다.

오늘 복권을 구입하면서 보니 머리가 허연 노인한분이 내가 구입한 금액의 세배나 되는 돈을 지불하고 복권을 사더라.
저분은 저 나이에 수백만달러 짜리 복권이 되면 과연 무엇을 하려고 저걸 사나 이렇게 생각도 해보았다.

가끔씩 사람의 삶이란 어떤 경우 삶을 포기할 수 있을만치 소중한 것이고,
때로는 영원히 살것 처럼 집착하는 것 만큼 값어치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작년인가 언제에는 
중국의 손문,장개석,그리고 누구더라 홍콩의 금융 자본가 이렇게 당대의 중국 근대화 영웅 세명과  결혼한 송경령, 송미령, 송XX등 명문세도가 송씨 세 자매의 인생을 다룬 오래된 영화를 본적이 있었다.

그중 누구이던가?
아마도 장개석의 부인 송미령 같던데,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했나?
그 부인이 연못인지, 개울가인지... 조그만 의자에 말없이 앉아있던 그 영화의 마지막이 너무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오늘 하루는 
정말 눈부시게 싱그러운 초 여름날이었지만,

그날 하루도
정말 눈부시게 싱그럽던 초 여름의 어느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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